신변잡기2018. 8. 5. 01:33

공백


무더운 여름날,

초열대야가 열대야로 바뀐 날.


낮잠을 자고 깨어나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다가,


이러다가 1년이 지나가고,

나의 삼십세는 공백으로 남을 것 같다는

또렷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하루키가 2루타를 치는 것을 보고,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느낀 것과 같았다.




황량한 서울


초저녁 낮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 지금 한국에서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금 당장 떠나야 하는 것일까?


딱히, 충성을 다해야 하는 미인도 없고,

딱히, 영혼을 바쳐야하는 소속된 곳도 없고,

딱히, 열정을 쏟고 싶은 업도 없다.


매일 스카이스캐너를 뒤져가며,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지만,


7말 8초 초성수기 휴가철인지라,

비행기값이나 숙박비가 매우 비싼 편이다.


나처럼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으로써,

휴가철은 어디 떠나기도 돈 아까운 시기다.


다들 일터로 돌아가란말이야...

"GO BACK TO WORK!!!"




목적지의 장단점 그리고 여행작가.


내가 제일 사랑한 도시,

로스앤젤레스와 방콕.


그리고 요즘 내 구미를 당기는 섬 2곳.

아이슬란드와 북해도.


그러나,


로스앤젤레스는 가면 렌트를 해야하고,

방콕은 이미 여러번 다녀왔고,

레야키비크는 한 번 경유를 해야하고,

북해도는 생각보다 심심해보이는 섬이라,


어디로 떠나야 할지, 결정이 어렵다.

발리나 하와이 등 휴양지를 가자니,

혼자 가기에 좋은 곳은 아닌 것 같고...


어디로 떠나고 싶은 것일까?


차라리, 알래스카나 타히티, 이스라엘, 알제리 등.

관광지로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곳을 가보고,

그런 곳들이 점차 쌓이고 쌓이면...


70개국을 돌아봤다는 이병률 작가처럼,

여행 에세이를 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애매모호한 생각.


역시, 여행처럼 남들 다 좋아하는 것으로 덕업일치 하려면,

그 분야에서 압도적 차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70개국이 왠말인가.

전 세계 200개 가까운 국가 중에,

삼분의 일 정도.


실질적으로 정치적 불안정,

또는 가봤자 의미없을 것 같은,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같은 곳을 제외하고,


여러 대서양, 남태평양 섬나라들 제외하면,

모든 대륙 구석구석을 다 가봤다는 말이다.


인도에서 승려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모르고 뒤에 탑승해서 가보기도 하고,

아프리카에서 풍토병, 티베트에서 고산병으로 고생하고,

이스라엘에서 권총강도 정도 만나보고,

브라질에서 강도 몇 번 만날 위험을 무릎써야,


"제 직업은 여행작가이자, 여행유튜버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야. 틀렸어.


몇 개국을 가든,

여행 에세이 한 권을 쓰면, 여행 작가고,

여행 영상 하나 유튜브에 업로드하면,

그 순간부터 여행 유튜버다.




반포지구 치맥


오늘따라 갑작스레,

선선한 바람이 분다.


아직 한여름의 중턱이지만, 

초저녁에 잠을 잘 수 있는 날씨고,


이번 주 내내 39도 가까이 올라가던 기온이

35도 정도가 되었을 뿐인데,

전반적인 삶의 질이 상향 시프트가 되는 듯 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여름 저녁은 언제나 좋고,

머리가 띵한 정도의 차가운 맥주와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치킨을 뜯고,


그리고 한강 건너 용산에서 심야영화 한 편 때리고,

부지런히 심야버스 타고 집에돌아오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근데 올해 박스오피스는,

버닝을 제외하고, 마음에 드는 영화가 딱히 없다.




텐동


지난 주부터 텐동이 먹고싶다.

구성은 온센다마고, 가지튀김, 꽈리고추, 새우튀김 정도로,


눈꽃 같은 튀김 옷이 묻은,

정통 일본식 굵은 젓가락으로 소담스럽게 담아낸 텐동 한 그릇,


정통 일식은 언제나 정갈하고,

1만원 대에서 한끼 식사를 해결하기에 딱 좋은 것.


을지로 주변의 많은 노포와 30년 이상 된 맛집들,

밍밍한 듯, 심심한 맛의 육수에 빠진,

100% 순도 높은 메밀면의 평양냉면.

그리고 아직 겪어보지 않은 함흥냉면도 먹고싶다.


그리고 코르타도를 잘 뽑아내는,

커피 잘하는 로스터리 카페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수다를 좀 나누다가, 뉘엇뉘엇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와인집으로 간다.


와인집에 가서는,

적당한 깊은 맛이 나고, 향이 풍부하며, 밸런스가 잘 잡히고,

드라이한 미국 와인과 함께, 멜론과 하몽을 시켜서,


귀를 간지럽히는 리믹스된 음악이 나오는 곳에서,

투명한 와인잔이 부딪히는 진동을 느끼며, 향을 느끼고 싶다.


요즘은 내 책상 위에는...


홋카이도와 도쿄 여행가이드북이 있고,

도쿄 현지인이 작성한 도쿄 카페 책자가 있고,

황금수저를 들고 맛집들을 기록한 셰프의 맛집책이 있고,

와인에 대한 정보들을 기록한 와인책이 있고,

백종원이 쓴 식당 경영 노하우 책이 있고,

있고, 있고...




나, 다시 가게하고 싶어요.


내가 최근에 가장 즐겨보는 방송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다.


조보아씨가 너무 귀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백종원씨의 식당경영 노하우를 보며,

애매한 식당 사장님들이 교정되어 가는 모습,


그리고 어쩌면 나도 식당경영을 하고 싶다는 카타르시스.


내가 가게를 차릴 정도의 현금이 몇 천만원 생긴다면,

2가지 정도의 가게를 하고 싶다.


하나는, 와인, 위스키, 브랜디, 칵테일 등 술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Bar

- 미인과 데이트 코스에서 저녁식사 마치고 마지막에 데려가고 싶은 Bar

- 약속이 펑크난 주말 저녁에 혼자 들릴 수 있는 Bar

- 청담동에 있는 여러 클래식, 스피키지 Bar들이나, 거기서 조금 더 캐쥬얼한 Lounge느낌이 나는 정도.

- 쩌는 분위기와 가성비를 무시하는 가격이 핵심. 때로는 주말에는 커버차지까지 받을 수준의 하이엔드.

- 퍼스트클래스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게...?


두번째는, 이탈리안과 프렌치 + 쓰촨과 광둥 때로는 일식을 퓨전한, 동서양 퓨전요리를 판매하는 집

- 음... 적어놓고 보니, 웨스턴과 오리엔탈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너무 욕심이 많은거 아닌가 싶다.

- 마렘마, 쿠촐로, 오르조, 렁팡스, 그랑씨엘 같은, 코스말고 단품요리파는 웨스턴 음식 전문점.

- 거기에 때로는 트렌디한 마라롱샤를 팔기도 하는, 흑석동 바야흐로 같은?

- 다시 생각해봐도, 어느 하나 제대로 못하겠다. 이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순신 마인드


20년 가까이 된 친구가 있다.

삼수해서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기 전에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은,

여자친구의 고향 전라도에서 임용고시를 한 번 합격하고,


그리고 인생 너무 만만하게 본 것 아니냐는 듯 헤어지고.


군대에서 다시 공부해서 서울에서 임용을 또 합격하고,

발령이 나지 않아, 계약직 교사를 하면서 발령대기 중인...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서 비트코인을 실컷 하다가,

쌩빚 (순자산) -3,000만원까지 기록하고,


이순신 마인드로, 필사즉생! 을 각오하며,

카드론을 땡겨서, 순자산을 전부 회복하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시드를 다시 회복했다.


그러고보니... 나도...


"전하, 신에게는 아직 마지막 시드 1,000만원이 남아있사옵니다..."


울돌목의 왜구처럼 달려들다가, 지난 번에 처발렸지만...

이번에는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싸워서 승리하리라!

(비트코인 USD $7,000 간당간당하다, 과연 오늘을 넘길 것인가?)

Posted by Hoil Kwon
신변잡기2018. 7. 31. 01:43

제2의 스타일난다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스타일난다가 되기를 바라는,

현실적 욕망이 가득해보인다.


경제신문은 비슷한 사례를 발굴하고 조명해서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붓고,


일부는 기사를 보고,

또 '누구 하나가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떠났구나'하며

아쉬움과 상대적 박탈감의 감정을 뒤섞는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부자고

대다수는 빈자다.


부자는 빈자들이 놀 때

과감히 리스크를 지고 무언가를 실행했고


빈자들은 그들이 무언가를 실행할 때,

남들과 비슷하게 쉬운 선택을 했거나,


아니면 운이 따라주지 않아,

잘 풀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부자나 빈자나 운이 7할을 작용하기 때문에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모두를 싸잡아 힐난할 수 없다.


Wrong Number


K는 숨이 막혔다.


면접이라니... 

K는 직장의 느낌을 잊은지 오래였다.


예술 관련 일을 하고싶어 했던 K였지만,

도착한 공간이 주는 느낌은 효율화, 최적화에 가까웠다.


눈썹이 짖고 의심이 많아보이며 꼬투리잡기 좋아하는 면접관은,

일관된 무관심을 보여줬고,


인사담당자는 계속해서 좋은 면접 프로세스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면접자들의 리뷰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주도했던 푸근한 곰 같이 생긴 하얀 피부의 면접관은 편안함을 줬다.


K는 '붙는다고 하더라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다시 일하고 회의하고 밥먹고 회식할 생각을 하니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변화된 일상에 적응한다는 것은 현재 편안한 삶을 버려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마주앉은 그들 사이에 무미건조한 이야기가 오가며,

서로의 머리 속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들을 주고 받았지만,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는 지역에서 라디오를 튜닝하는 것처럼,

무언가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하고 싶은 것


그놈에 지겨운 말,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예나지금이나 조언이랍시고 똑같이 하는 말.


'나도 분명 그런게 있겠지' 라는 생각에,

많은 경험을 위한 시도를 했다.


공부도 하고, 음악 동아리도 해보고,

알바도 다양하게 해봤으며, 회사도 다녔고,

어린 나이에 팀장도 해봤으며, 책도 많이 읽고,

연애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마셨고, 클럽과 나이트도 많이 갔다.


아시아, 유럽, 미국 등 비행기도 많이 타고 여행 다녀봤고,

내가 번 돈으로 일 안하고 돈 벌고 싶어서 가게도 차려보고,

화려하게 살아보고 싶어서 중형 독일차도 신차로 질러봤다.


이쁜 여자친구도 만나보고, 배경 좋은 여자애들도 만나보고, 공부잘하는 애도 만나봤다.

그리고 님들한테 말못할 일도 해봤다.


뭘 더 해보고, 더 놀아봐야 내가 하고 싶은게 찾아지는 것인가?


이것저것 더 해보면 딱! 이걸 해야겠다 하고 찾아질 줄 알았지만...


그저 포르쉐 911이 사고싶고,

서래마을에 단독주택 하나 사고싶고,

더 이쁘고 어린 여친, 더 많은 세계여행,

디브릿지에서 돔페리뇽 깔아놓고 생일파티나 해보고 싶어지더라.


이것저것 다 해봤으니 하면서 느꼇던 것들을 정리하고,

머리에 구멍이 뚫리도록 회고를 해봐도, 난 딱히 그런거 없다.


그냥 돈쓰고 노는게 좋다.


그나마 지금까지 안해본 것 중에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예술? 페인팅, 드로잉, 디제잉, 모델, 문학


그리고 돈 안되는 내 취향 드러내기 위한 가게 차리기.

...가만보면 난 빈지노가 되고 싶은 것 같기도하다.


Posted by Hoil Kwon
신변잡기2018. 7. 27. 23:56

사고


K는 역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 머리 속에 무언가 스치고 있었다.

'나 그동안 뭐한거지, J는 가끔이라도 내 생각 했을까'


한여름의 밤, 사람들은 분주하게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K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지만, J는 움직이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K에게 갑자기 어떤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누구를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그 때보다 잘 지내고 있지 못한게 마음에 걸렸다.


J와 같은 지하철 호선을 타기 때문에,

K는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며 잠시 시간을 멈춰세웠다.


깜짝놀라 내려앉았던 마음 속에 그 사이 쓰라림이 자리잡고,

K는 줄담배를 피워대며 생각했다.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네, J가 나를 보긴 했겠지? 말이라도 걸어볼 껄 그랬나'


"안녕? 오랜만이다"

"깜짝이야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은 몰랐네"

"그러게. 나도 놀랬다. 잘 지냈어? 여전히 이쁘네"

"똑같지 뭐. 오빠도 뭐가 바뀐 것 같네"

"응. 요즘 여름이라. 그땐 겨울이었으니까"


...


"그래. 잘 지내고"

"응. 너도. 항상 건강하고"


K는 '그래 말을 걸어봤자 무슨 얘기나 더 했겠냐' 하며,

차라리 못본 척 지나친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Posted by Hoil 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