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2018. 2. 11. 22:04

#신변잡기 29. 자산을 탕진하고 발생한 결과에 대하여


지난 8개월 간, 제가 가진 자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자산을 탕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진 자산을 모두 현금화해야 합니다. 저는 가진 것들을 전부 현금화했더니 수중에 1.3억원 정도의 현금이 생겼습니다. 대출을 제외한 순자산으로만입니다. 20대 후반 5년간 일해서 모은 돈이었고, 학교다니고 띄엄띄엄 직장 옮겨다니고, 가게하면서 대략 5년 남짓한 기간이 소요됐습니다.


그 돈은 마치 저의 인생의 전부인 것 같았습니다. 탕진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돈은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탈수증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돈을 아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돈을 아끼고 모으고, 갖고 있던 대출금을 상환하려 노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늘 저는 제가 원하는 것들, 라이프스타일의 욕망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이라면, 독일차를 사고싶다, 해외여행 가고싶다, 가격표 안보고 원하는 것 사는 쇼핑을 하고 싶다, 이쁜 여자친구와 레스토랑과 호텔을 돌아다니는 데이트를 하고 싶다 등 입니다.


돈을 모으면서, 저는 계속해서 저의 원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참고 참고 참으면서 살았던 것이지요. 결핍된 욕망들은 제가 절제라는 고삐를 놓아버린 순간 순식간에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산을 탕진하는 과정은 하루하루가 행복했었습니다. 강남3구 비싼 오피스텔에 살고, 수입중형차를 신차로 지르고, 미국으로 1달간 여행가고, 가족들과 호화여행도 가고, 승무원 여자친구를 사귀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가장 비싼 날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놀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제 마음 속에 쌓여있던 욕망의 부채들은 점점 상환되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가진 현금을 모두 소비했고, 대차대조표 상에 순자산은 0원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렇지만, 그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여전히 저는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하고, 어떻게 하면 원하는 액수의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그대로입니다. 1.3억이 있으나 없으나, 저의 삶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망,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희구는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독일차가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이제는 있다고 해도 크게 변하지 않고, 현재보다 조금 편해지고 기분이 좋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뿐입니다. 길게 갈 수 있는 해외여행도 마찬가지이고요. 이쁜 여자친구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삶을 바꾸지 못하는 액수의 돈은 생각보다 별거 아닙니다. 1~2억 작다면 작은 그 돈은, 제가 원하는 삶을 사는데는 택도없습니다.

Posted by Hoil Kwon
신변잡기2018. 2. 10. 02:09

#신변잡기 28. 직장. 직업. 꿈.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


직장에 다니지 않기로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직장을 다니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직장을 그만둔지 이미 52개월 정도 (2년 4개월) 정도가 지났지만 말이다.


내 커리어 이야기를 나열해보려 한다.


1. 2011년. 첫번째 100만원 인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보자.


먼저, 애초에 나는 직장인이 되려고 회사에 가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인턴십을 시작한 회사는, 도무지 창업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난 첫번째 회사를 4개월 후에 '사업을 할꺼라는 이유'로 그만두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긴 했었다. 물론 그 때 당시는 그들이 하는 겉모습 베끼기였을 뿐이었지만, 난 그 때는 그렇게 하면 사업이 되는 줄 알았고, 내가 아는 방식 내에서 당시 하고 싶었던 음원유통사업을 해보려고 했다.


2. 2012년 3월까지. 음원유통사업.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원유통사업을 혼자 힘으로 해내려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대표 명함도 파보고, 관련된 인디음악 레이블도 만나보고, 매거진도 만나봤다. 그때는 난 이제 막 제대한 복학생이었고, 겨울방학이었다.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았고, 나는 무엇보다 사업을 해나갈 자금이 없었다. 자금조달이라는 개념도 딱히 없었고, 돈 없이 열정과 패기만으로 창업을 하려고 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해나가는 분들이 계시긴 하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은 고작 인턴십 하면서 모아놓은 1~2백 만원 정도의 돈이었다. 결국, 뭐 해보지도 못한채 그 돈은 그냥 내 용돈겸 생활비로 바닥이 났고, 그 무렵 나는 음원유통을 하고 싶은, 나와 비전이 같은 어떤 분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을 도와서 사업을 했다. 물론 무보수로 아마 그 때 내가 보수를 받았다면 계속 그 분과 함께 그 사업을 해나갔을지도 모를일이다.


결국, 그 분을 도와서 나는 짧은시간에 여러 성과를 냈었다. 공간도 마련했고, 나름 이름있는 엔젤투자자와 콜도 잡았었고, 회사소개서와 초기 사업모델을 만들었고, 그 사업을 해결해줄 핵심 인재도 발굴해서 끌어왔다. 그러고보니 무보수로 너무 많은 것을 해준 것 같다. 아무튼, 역시나 나는 돈이 없었고, 돈을 벌어야만 했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3. 2012년 4월까지.

그래도 사업. 너무 절실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또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모델을 갖고, 여러 팀과 평가단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피칭했다. 정말 마음이 급했다보다. 그렇게 피칭을 하면 누가 내 열정을 보고 쉽게 몇천만원을 꽂아줄 것이라 생각했는지. 나는 그 사업모델을 계획서를 작성하여 정부지원사업에 제출했고, 내 열정을 다독여주고 싶었는지, 센터장님이 특별 심사로 나를 본선에 진출시켰고 나는, 현역 VC와 센터장님, 그리고 여러 평가위원 앞에서 대놓고 피칭을 망쳤다. 그리고 난 그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조금 더 배워야겠다는 판단 핑계 겸,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4. 2012년 8월까지. 두번째 100만원 인턴.

아직 아닌가보다. 그리고 난 돈이 필요해.


새로운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제품 런칭이 1개월 가량 남은 상황이었고, 우리는 넥스트 티켓몬스터가 될 것이라며, 꿈에 부풀어있었고, 열정넘치는 쥬니어 인재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처음 해본 영업이었고, 어려웠다. 제품 런칭 이후에 모두가 하고 싶은 자리인 마케팅 자리에 나를 앉혔는데, 그 때도 나름 여러가지를 했었다. 소셜미디어 운영, 콘텐츠 제작, 제휴처에 POP 비치하고, 강남역에 혼자 판촉물을 만들어서 나눠주고. 아마 당시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한 것 같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사업은 타이밍이 안맞았다. 너무 지쳤고, 마침 학기 복학 타이밍이라 그만뒀다.


5. 2013년 7월까지. 세번째. 150만원+인센티브 영업 인턴. 2013년 통산 연봉 4,800만원.

여전히 난 돈이 필요해. 졸업해야되니까 돈 좀 벌자.


학교를 다녔고, 겨울방학이 됐고, 난 여전히 돈이 필요했다. 그 때 생각으로는 딱 1년만 더 일하고, 등록금과 내 학교 생활비 정도를 벌자는 생각이었다. 난 다시 첫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난 그곳에서 영업을 하게 됐는데, 인센티브를 포함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 물론 열심히 했고, 실적이 좋았다. 내가 가진 영역 내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난 그 때 아마 행복했다. 물론 내부적으로 여러 챌린지를 받고 시기를 받았지만 말이다.


6. 2014년 9월까지. 네번째. 110만원+인센티브. 2014년 통산 연봉 1억 2,000만원.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내가 돈을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래 한 번 가보자.


친구의 제안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곳으로 회사를 옮겼다. 초반 3개월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난 또 다시 그곳에서 해냈고, 100일 쯤 되던 때에 터졌고, 인센티브가 폭발했다. 그 해애 내 토탈 연봉은 4,800만원이었고, 내 나이는 25살이었다. 해를 넘겼고, 6개월이 되던 타이밍에 나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 내가 돈벌라고 이렇게 고생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난 사업을 하려는 꿈이 있었고, 원했던 등록금도 벌었고, 빌어먹을 복학 타이밍도 있었기 때문에. 그러던 중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또 한 건이 크게 터졌고, 계속해서 내 젊음을 돈과 트레이드하고 있었다. 연봉은 1.2억 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하고, 내 나이는 26살이었다.


7. 2015년 10월까지. 다섯번째. 연봉 5,600만원+스톡옵션.

사업을 하려면 '장'을 해봐야되는데... 26살에 팀장. 그리고 스톡옵션이라니.


회사를 다시 옮겼다. 그 때 옮긴 이유는 아마, 팀장을 해보고 싶었던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사업을 해보려면 장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보상은 기본급으로 바꿨고, 아. 물론 내가 고정적인 급여를 얼마씩 원해서 옮긴 것은 전혀 아니었다. 스톡옵션으로 더 높은 액수를 벌 수 있다면, 그 스톡옵션에 희망을 약간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난 그 때 대표의 매력에 끌렸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스톡옵션은 꽤나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매출의 증가폭은 더뎠다. 1년을 다녔는데, 모은 돈이 1,00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스톡옵션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더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마침 학교도 다니고 싶었고, 졸업이 하고 싶어서 난 그만뒀다.


8. 2016년 8월까지. 1억원 수준의 연봉. 첫번째 가게.

이정도 연봉도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데... 친구가 가게로 편하게 돈을 잘벌고 있었다!


내겐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전 회사에서 받던 연봉은, 대기업 과차장급이었다. 마지막 8학기를 마치고, 2개월간 준비하여, 가게를 차렸다. 아마 그 때는, 돈도 벌 수 있고, 내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그 반대급부 또한 많이 가져왔고,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난 가게를 프리미엄을 받고 매도를 했다. 이것도 참 잘했다. 아직 같은 아이템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 Flip을 했다. 아마 그 때 순이익으로 8,000만원 정도를 벌었던 것 같다. 실수령이니. 아마 세전 1억원 수준.


9. 2017년 5월까지. 1억원 수준의 연봉. 두번째 가게.

아 아직 이 아이템으로 기회가 더 남아 있는 것 같다. 딱히 할 것도 없는데 조금만 더 해보자.


그 다음 해에 5개월 안되는 기간 동안 순이익 2,500만원 수준을 남겼고 5월 중순에 가게를 넘겼다. 여전히 세전 연봉 1억 수준. 그 때 가게를 팔게 된 계기는 너무 힘들고, 내가 노력한다고 한들, 로컬사업이기 떄문에 확장이 어렵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레버리지가 많이 껴있어서, 돈을 벌어도 시설의 감가상각을 고려할 때, 결코 큰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국 단위로 확장이 용이한 '제품/상품' 판매를 하기 위해서 가게를 팔았다.


10. 2017년 7월까지. 제품 판매 사업.

내가 노력을 투입하는 만큼 돈을 더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품/상품을 팔자. 걔는 연매출이 300억이라는데...


가게를 팔고 나니, 생각보다 내가 하려했던 사업은 포화가 되어 가고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라도 시작할껄 새로운 사업모델도 딱히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침 나는 가상화폐에 남들보다 일찍 눈을 뜨게 됐고, 딱히 할만한 사업이 보이지 않으니 투자해서 자본이득을 챙겨보자는 생각이었지만, 좆망 


11. 2018년 1월까지. 인생걸고 비트코인.

가상화폐 똥망, 이제는 단기적으로 고수익내는 것을 찾으니 시작을 못하니까, 차근차근히 할 수 있는 걸 하자.


내가 노력을 투입하면 비례해서 성과가 증대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지금 내 눈앞에는 캔들이다. 1억의 연봉을 벌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아마 없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은 것 같지만  


-- 이상


내 주변에 제품팔아서 내가 원하는 수준의 목적을 이룬 사람이 있으니, 난 그 사람이 한 것을 열심히 따라하려 한다.

내 주변에 다른 방법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면 난 그것을 따라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답을 찾을 것이고,

내가 원하는 그 지점까지 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해왔듯이,

계속해서 노력 할 것이고,

그 지점에 언젠가는,

도달할 것이다.














Posted by Hoil Kwon
신변잡기2018. 2. 6. 15:54

#신변잡기 27. 누나를 보내는 날


누나가 출국했다. 지난 12월, 춥디 추운 한국에 다시 새로운 꿈을 갖고 왔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의 꿈은 무산되고, 누나는 기회를 찾아 다시 나갔다.


슬프다. 21세기판 국제시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고졸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기회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많은 핸디캡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내 주변에는 대부분 인서울 4년제, 남자이고, 내가 겪었던 커리어와 전공 때문인지 각자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사업가들이 많다. 누나의 주변 사람들 환경과 비교해봤을 때, 딱 대한민국 '중앙값'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술먹고 택시타고 집에온 날에는 그 날 번 돈 보다 쓴 돈이 더 많은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중 극히 현실을 견디지 못해 일부가 기회를 찾아 떠난다.


잘 해야 한다. 20대를 되돌아보면 여전히 B+ 정도이지, A 수준의 인생도 아니고, 그 마저도 한 순간에 미끄러져, 20대의 마무리는 고점에서 수직낙하하는 기분이었다. 30대는 등떠밀려 시작됐고, 이제는 가진 에셋이 무형자산만 남은 것 같다.


결국은 그저, 잘해야 한다로 결론을 도출할 수 밖에 없다. 잘해야 한다.

또 다시 오늘 다짐하고, 좀 더 깊게 새기자.

잘되자. 꼭.

다시.


우리 가족 좋은 곳에서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는 그날까지.

Posted by Hoil Kwon